장애인태권도 주정훈 "패럴림픽 금메달 들고 할머니 묘소 갈 것"
할머니 댁 소여물 절단기에 장애인 된 주정훈 "할머니, 도쿄패럴림픽 끝나고 별세"
"도쿄 대회 때 따지 못한 금메달, 묘소에 바칠 것"
(포커스 어빌리티) 윤상준 기자 = "파리 패럴림픽에선 꼭 금메달을 딸 겁니다. 그리고 할머니가 생전에 좋아하셨던 소고기와 금메달을 들고 묘소를 찾겠습니다."
한국 장애인 태권도 남자 80㎏급 간판 주정훈(29·SK에코플랜트)은 25일 경기도 이천선수촌에서 열린 2024년 대한장애인체육회 국가대표 훈련 개시식을 앞두고 취재진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그는 "할머니는 2020 도쿄 패럴림픽이 끝나고 몇 개월 뒤 돌아가셨다"라며 "돌아가시기 전 내 이름을 불러주셨다고 하더라. 할머니를 위해 도쿄 패럴림픽 때 따지 못했던 금메달을 파리 패럴림픽에서 꼭 딸 것"이라고 다짐했다.
주정훈은 할머니를 생각하면 눈물부터 난다. 평생 죄책감을 갖고 살았던 할머니였기에 그렇다.
주정훈은 만 2세 때 장애인이 됐다.
그는 경남 함안군에 있는 시골 할머니 집에서 소여물 절단기에 오른손을 넣었다가 끔찍한 사고를 당했다. 이후 할머니 김분선 씨는 아들 내외와 손자를 볼 때마다 자신이 죄인이라며 마르지 않은 눈물을 흘렸다.
한평생 눈물 속에서 산 김분선 씨는 2018년 치매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조금씩 손자를 알아보지 못했다.
주정훈은 장애인 태권도 국가대표가 돼 2021년에 열린 2020 도쿄 패럴림픽에서 동메달을 차지했지만, 할머니는 이 역시 인지하지 못했다.
주정훈은 대회가 끝난 뒤 동메달을 품고 할머니가 계신 요양원을 찾았다.
할머니는 여전히 주정훈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리고 몇 개월 뒤, 할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주정훈은 할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요양원을 찾았지만,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대신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주정훈은 "할머니가 내 이름을 부르셨다고 하더라. 가슴이 먹먹했다"고 말했다.
그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몇 개월 뒤 할아버지도 돌아가셨다"라며 "두 분은 선산에 나란히 모셨는데 파리 패럴림픽을 앞두고 찾아뵐 예정"이라고 했다.
그는 "대회가 끝난 뒤엔 금메달을 들고 가겠다. 평소 좋아하셨던 소고기도 싸가겠다"고 말했다.
주정훈은 한국 장애인 태권도의 간판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 태권도를 배운 주정훈은 엘리트 태권도 선수의 길을 걸었고, 비장애인 선수들과 당당히 경쟁하며 유망주로 기대를 모았다.
그는 사람들의 시선에 상처받고 고교 2학년 때 운동을 포기했지만, 태권도가 2020 도쿄 패럴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자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그는 도쿄 대회 남자 75㎏급에서 동메달을 차지하며 한국 선수 최초의 패럴림픽 태권도 메달리스트가 됐다.
지난해 10월에 열린 2022 항저우 장애인아시안게임에선 한국 선수 최초로 우승을 차지했다.
주정훈은 "도쿄 패럴림픽 때는 외롭게 대회를 준비했는데, 지금은 대한장애인체육회에서 많은 지원을 해주신다"라며 "이번 대회에선 꼭 우승해 후회를 남기지 않겠다"고 밝혔다.
기사발신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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